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리 헤링턴 (문단 편집) ==== 그는 왜 이런 짓을 한 것인가? ==== 일본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부모에게서 자라 그들의 문화에 둘러싸여 유년기를 보낸 바가 있고[* 위의 생애 파트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이러한 이력 때문에 스스로 일본과 엮인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과거부터 일반적인 미국인에 비해 꽤 이질적인 일본 문화에 박식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조국에서는 그냥 적당한 이력의 게이 포르노 배우 정도인 그가 일본에서 이상할 정도로 이례적인 큰 인기를 얻고 제2의 삶에 가까운 기회를 얻은 것을 보면 그가 [[와패니즈]]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일본에 가서 그의 팬인 청중들 앞에 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하는 등 물론 그 분위기는 반쯤 장난스러운 것이었지만 일본에서만큼은 굉장한 호사를 누렸다. 그가 이런 대응을 한 원인은 근본적으로 병사의 행동을 위주로 본 빌리 본인의 생각과 비인륜적인 명령을 내린 지휘층 중심으로 생각한 타국 팬들과의 차이를 짚지 않았고 페이스북은 본인 혼자 보는 장소가 아닌 개방적인 장소임을 고려하지 못했으며, 온라인에서는 파장이 퍼지기 쉽다는 점 역시 간과했다. 한국이 빌리를 좋아해도 빌리에게 딱히 이익이 오는 것이 아니어서 소홀히 여긴 것으로 보인다. 사실, 빌리가 생각하던 '조국을 위한 장렬한 산화' 식의 카미카제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카미카제]] 문서만 봐도 초창기의 카미카제는 군 수뇌부의 강요로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다. 초기의 카미카제는 귀환이 불가능해진 조종사, 애국심과 투쟁심이 투철한 조종사들이 가졌던 '최후의 자살 특공을 해서 적에게 어떻게든 타격을 주겠다.'는 의지로 인해 발생하였던 것으로, 이는 문화권을 막론하고 적과 아군의 두려움과 경의를 사는 전훈으로 인정받았다. 당장 대한민국 국군에서 꽤나 숭앙하는 [[육탄10용사]]의 사례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육탄10용사 자체가 허구라는 설도 있다. 교전에서 패배하고 나서 상부의 처벌을 두려워한 일선 장교들이 "전사"를 자폭 공격으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 군의 6.25 참전자 증언록에 실려있던 내용인데, 문제가 되자 훗날 삭제되었다. 그리고 예비역 육군 준장인 박경석 장군도 2020년 7월 9일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육탄 10용사를 비롯한 6.25 영웅담 상당수가 날조, 과장되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육탄 10용사 중에서 한 병사가 북한 방송에 나와 귀순 월북을 종용한 사건도 있었다고.[[https://v.daum.net/v/20200709095506265|#]]] 빌리가 추앙했던 카미카제는 이쪽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가 좋아하는 일본 무사의 정신인 [[무사도]]는 그의 생각과도 달랐다. 아예 무사도 자체가 메이지 유신 시대에 일본의 지식인들이 서구의 기사도를 참조해서 조작한 '''만들어진 전통'''이란 게 정설이다.] 그러나 카미카제 '전체'를 보면 달랐다. 태평양 전쟁 초기에만 해도 파일럿의 자살 돌격은 개인의 의지요, 일개 군인이 강대한 적을 상대로 가할 수 있는 최후의 전투 행위였다. 그러나 [[필리핀 해 해전|마리아나에서 거하게 칠면조 사냥을 당한 이후]]에는 그렇지 못했다. 일본군 상층부는 조종사를 '''일개 유도 장치'''로 취급하여 카미카제를 강요하였고, 그 때문에 많은 비숙련병, 심지어 숙련병들조차 [[자살|돌아오지 못할 비행]]을 하였다. 이는 카미카제가 진주만 공습 및 태평양 전쟁 초기에는 소소한 전과를 올렸던 것과 달리, 태평양 전쟁 후반에는 성과를 올린 것이 거의 없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방증된다. 미군이 외계인을 갈아 가공할 [[VT신관]]을 사용한 시점에서 카미카제를 하였으니, 자살 특공은 아무 의미도 없는 개죽음에 지나지 않았다. 강요된 자살을 하던 병사들은 카미카제용 전투기에 타기 전에 하나같이 허구한 날 외쳐대던 덴노 헤이카 반자이가 아닌 '어머니(お母さん)'를 외치며 울었으며, [[맨발의 겐]]에서 나오듯 시시각각 닥쳐오는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 술을 마시다가 결국 폐인이 되어 '유도 장치' 역할도 못 한 경우도 있었다. 즉, 후기의 카미카제에는 빌리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조국을 위해 내 한 몸 불사르겠다'는 사명감이나 무사도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미쳐 돌아가는 대본영과 군부로 말미암아 강제 징병 된 조종사들이 울며불며 억지로 비행기에 태워졌을 뿐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조선인을 절대 해군, 정확히 말해 수병으로 징집하지 않았지만 카미카제에는 징집했고, 대표적 사례가 예과 후보생으로 차출되었다가 간신히 살아난 [[김재규]]이다. 이것만 봐도 후기의 카미카제는 약자에게 하나의 포탄의 역할과 자살을 강요하는 행위였던 점을 알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카미카제가 '''얼마나 무사도와 거리가 먼 행위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작 일본군의 에이스 파일럿이자, '''빌리가 생각했던 무사도에 충실했고''' [[제로센]]으로 미군의 신형 전투기를 격추하던 [[이와모토 테츠조]]는 '''"죽으면 끝이야. 전투기에 오르는 건 '계속 날아올라서' 적기를 격추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죽어도 이 전투기에서 싸우다 죽는다."'''라는 말을 하였고, 비록 전후라지만 일본군의 에이스 파일럿이었던 [[사카이 사부로]]조차 카미카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일본에서 자랑하는 에이스 파일럿들조차 카미카제는 그냥 인력과 전투기의 낭비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정황상 빌리는 전기의 카미카제가 가진 이미지를 카미카제 전체의 이미지로 혼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입장에선 개념 정리가 끝났기 때문에 정치적인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나치에 빗대 말하는 것이 싫었던 것으로, 이는 태평양 전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다수의 [[와패니즈]]가 가진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대부분의 미국인/유럽인들이 아시아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이런 피상적인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놀라운 경제 성장과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은 문화 홍보와 겹쳐서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한마디로 와패니즈 혹은 일뽕이 자라나기 아주 좋은 환경이란 것. 특히 승전국인 미국의 국민들에게 있어 카미카제의 이미지는 전자의 '숭고한 자살'로 인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누군가가 전기와 후기 카미카제의 차이점을 자세히 설명하고, 일본군 파일럿 중 귀감이 될 만한 이와모토 테츠조의 사례, 식민지 사람이었던 조선인까지 강제로 징집되었다는 것을 들어 조곤조곤 친절히 설명했다면, 빌리 역시 알아들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실제로 '''빌리 본인이 이후 한국 유저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사과를 건넸다.''' 거기에 빌리 그 자신은 딱히 세계구급 연예인도 아니고[* 그랬다면 혼자서든 그의 기획사에서든 어떻게든 좋게 좋게 해명하고 사과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저 [[포르노]]업계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건축업에 종사하던 사람일 뿐이고 뜬끔없이 일본 넷상을 중심으로 강제적으로 아이돌이 된 케이스이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카미카제를 옹호하진 않았는데 1년 전의 포스팅에 관해서 갑자기 논란이 일어난다면 그의 입장에서는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쉽게 판단하기 힘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다시 타국 팬들과의 나눈 토론으로는 역사 지식의 관한 무지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위안부, 강제 징집이나 전쟁 범죄를 옹호하는 거보다는 그냥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정신 자체를 무사 정신으로 받아들여 '멋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는 빌리뿐만이 아닌 것이 일본의 전쟁 범죄의 피해를 입은 국가가 아니고 일본의 전쟁 범죄에 무지한 사람들은 반자이 돌격이나 가미카제 같은 미친 짓을 미화된 모습만 보고 받아들여 사무라이 정신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빌리도 그중 하나였을 뿐이지만 문제는 빌리가 한국과 중국 등지에 상당한 팬층을 보유한 우상화된 인물이라는 것. 훗날 자신의 잘못된 역사관을 깨닫고 중국 팬덤과 한국인 유저들에게 진중한 사과를 건네며 "(한중일이) 서로 그만 싸웠으면 좋겠다"고 글을 올린 것을 보면 그 또한 역사와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무지했을 뿐, 빌리 본인이 전범 국가를 옹호하려는 목적으로 글을 썼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자신의 논리가 바닥을 보이면 애써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다수의 사람들과 다르게 빌리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한국과 중국에 진심 어린 사과를 전했는데, 그가 정말 갱생 불가능한 와패니즈에 불과했다면 결코 이러한 대응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는 다른 그 세대의 미국 남성들만큼이나 [[마초]]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그의 말 따라 300의 스파르타 전사들, 일본의 사무라이들과 같은 용맹한 고대 중세의 전사 계급에 매료되어 있었던 전형적인 근육질의 미국인 남성이었으나, 일본이 오래전부터 미국에 확산시킨 와패니즘 문화에서 비롯되어 대중적으로 재해석된 사무라이 무사혼과 카미카제라는 반인륜적 전쟁 범죄 행위를 혼용하는 '실수'를 범했던 것이며, 이를 깨달은 후 정중히 사과함으로써 나름 훈훈하게(...) 마무리된 사건이다.[* 사실 카미카제를 '애국자'라고 여기는 인물은 미국뿐 아니라 서구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가령 이토 준지 작가의 구소련 해체기의 실화를 담은 '우국의 라스푸틴'에서 나오는 '검은 대령'이라는 구소련의 극우 파시스트 정치가도 일본 카미카제 무사혼에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러시아도 일본의 무사혼을 배워야 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